어느 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온 나에게 내자가 집안에 있었던 해프닝을 설명할 때 귀로 들으면서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하는 심정이 되어 있었다.
마치 방망이로 뒤 통수를 연신 얻어 맞은 착각에 젖어 들었고 몸 떨리는 아니 영혼이 진동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계신 한국에서 오신 모 사모님께서 잠시 저희 집에 머물고 계실 때에 아들 희랍이가 자동차와 오토바이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놀면서 ‘상 놈의 새끼’라는 말을 쓰기에 정색을 하시곤 ‘희랍아 그 욕은 이제 한국에서도 잘 쓰지 않는 말이야, 그 말은 아주 나쁜 욕이란다.’ 하시자 고개를 저으며 냉큼 답하기를 ‘아니에요, 그 건 목사님만 쓰는 좋은 말이에요’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그 동안 내가 무심코 사용했던 말들이 여과 없이 내 아이의 뇌리에 입력되어 있다가 일순간에 튀어 나온 것이다. 정화되지 못한 내 언어, 못난 내 인격이 아이를 통해 백일하에 들어난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축소판이요 판박이 라는 말이 그렇게도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는 처음이었다.
도대체 다섯 살 먹은 내 아이의 심연에 자리잡은 나의 자아상은 무엇일까?
내 일상의 또 다른 목격자인 내자(안 사람)에게 과연 나는 무엇일까? 폭군, 위선자, 대책 없는 사람, 가슴 뜨거운 하지만 연약한 남자, 주의 종, 하나님의 사람, 목사, 식충이, 만년 학생...
서울 D교회에 시무하시는 스승이요 선배이신 H목사님께서 로마서 강의 시간에 자신의 체험을 말씀하시길 ‘어느 날 차를 몰고 가는데 후미 차량이 들 죽 날 죽에, 크락션에, 끼어들기에, 험담까지 해서 참고 참다가 성질이 폭발해서 육두문자를 썼더니 뱃속까지 시원하더라’고 말씀하셔서 «목사고 나발이고»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목사고 나발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즉 직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삶이다. 직분 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은 오늘의 공해 중의 공해다.
기독교인으로 주일 한 시간의 예배, 성가대원, 주일학교 교사, 집사, 장로, 목사 등등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생활이다. 그리고 우리 일상의 가장 정확하고 중요한 목격자는 우리들의 아이들이다. 그들의 평가는 가식도 체면도 없는 생 날 것이며 반사체다.
그들은 우리의 언어를 배우고 삶을 배우고 신앙을 배운다. 본인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신앙생활을 잘 하라는 것은 언어 도단이며 사치다. 자신은 담배를 피우면서 중학생 아들에게 ‘너는 피우지 말아라’하는 것은 피우라는 권면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 말하면서 슬그머니 지나쳐 버리는 것은 처세술 교육이다. 누가 전화를 찾으면 ‘엄마 없다고 해라’ 하는 것은 연극 교육이다. 자신은 도무지 배우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해라’고 고함 지르는 것은 파렴치한과 같은 행위이다.
자식 생일에 축하하러 온 자신의 친구들과 어울려 아이들은 방에 가두어 버리고 거실에 앉아 고스톱 판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유사한 우리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가 먼저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언어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종내 답습하는 것이다. 방탕한 아들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지만 실상은 방탕한 부모가 있는 것이다. 참된 인격은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정에서 아내와 자식에게 그리고 고용인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가정은 국가의 기초이다’라고 말하였으며, 페스탈로치는 ‘가정이여! 너는 도덕상의 학교이니라’고 강조하였다.
우리의 실상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교회도 직장도 사회도 아니다. 바로 가정에서 참된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할 때다. 아벨을 쳐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답하였는데 이러한 답변의 방법은 그의 부모 아담과 하와로부터 배운 못된 기술인 것이다.
자신은 연신 옆으로 걸으면서 자식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핏대 올리는 게가 돼서는 안되겠다고 다짐 해 본다. 아내 앞에서 아들 앞에서 더욱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게 하소서.
(이런 사건이 25년 전에 있었고 이 글을 쓴 지 23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여전히 욕을 쓰고 있다. 하여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죄인 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