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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압볼리

현지명 : 까발라(Καβάλα)

1. 성경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행 16:11∼12)
 

2. 지명의 유래

이 도시의 이름은 고대 거주민이 까발라에 도착한 것으로 간주되는 오늘날의 구 까발라 인 고대 정착지 "Skavalla"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스까발라는 B.C 470 년에 아테네 인의 동맹으로 언급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야만인의 습격으로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탈출하여 더 많은 보안을 위해 Christoupolis로 왔다. 새로운 주민들의 도착과 함께 도시는 다른 모습을 보였고, 크리스토 폴리스라고 부르는 것을 그만두고 Nea Skavala라고 불린다.

   [1] 네아 폴리스 Νεάπολις (BC 7 세기 – AD 746 년)

   [2] 흐리스뚜 폴리스 Χριστούπολις (AD 746 년 – AD 1470 년)

   [3] 까발라 Καβάλλα, Καβάλα (AD 1470 - 오늘)

다른 역사가들은 이 도시가 여기에 살았던 이탈리아 제노바 인의 이름을 따 왔다고 말한다. 말처럼 보이는 바다에서 도시를 처음 보았을 때 그들은 "말"을 의미하는 ‘카바지오’ (Cavallo = 말)라고 불렀고 그래서 «카발라»라고 불리게 되었다.

3. 인구

54,027명(2011년 인구조사)

4. 고도

해발 0 - 176m

5. 수호성인(Πολιούχος)

사도 바울(Απόστολος Παύλος)

6. 간추린 역사

까발라는 쓰라끼 지방의 가장 큰 도시이며 고대에는 싸소스(THASOS) 섬의 식민지로 ‘네아뽈리스’(NEAPOLIS, 새로운 도시라는 뜻)로 불리어졌다. 이 도시는 그리스도 이전 7세기 중반에 세워졌고 당시 도시의 중심은 그리스도 이전 650년의 ‘빠르쎄노스’(PARTHENOS) 여신의 고 사원이었는데 현재도 그 곳에 사원의 잔재가 몇 개 남아있다.

그리스도 이전 5세기경(아마도 사원이 파괴된 후) 제2의 신전을 싸소스 섬의 대리석으로 세웠고 이것은 이오니안 양식의 기초가 됐다.

네압볼리는 마께도니아의 필립뽀스가 두각을 나타낼 때 아씨나의 동맹이 됐으며 아테네와 같이 필립뽀스에 대항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도시는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당하는 셈이 된다.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때(그리스도 이후50년 경)에 들렸던 마께도니아의 첫 성이며, 4세기경에는 팡게오(PAGGEO) 산 근처에서 발견된 금광으로 인하여 중요한 곳이 되었다. 8세기가 끝날 무렵 ‘흐리스또뽈리(그리스도의 도시라는 뜻)로 개명되었다.

11세기 이후에 이 흐리스또뽈리스는 노르만 및 카탈린의 십자군 원정으로 인하여 심한 파괴되어, 안드로니꼬스는 성을 새로 축조했다. 성은 도시로부터 시작하여 산에 이르고 정상까지 이르렀는데 오늘날까지 많은 부분의 성벽이 남아있다.

1387년에 터키에 의해 정복되었고, 완전히 파괴되는 1391년까지 에마뉴엘 팔레오로고스 주교가 지사로 임명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에 ‘까발라’라는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까발라’라는 이름은 “말 등 위에”라는 뜻으로 이곳에 역마소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16세기에 도시는 히브라엠 사원 및 유명한 수로 타워 등 많은 공공 건축물이 지어졌고 지금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까마레스’라 불려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까발라는 상업 및 영적(종교적)인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곳에서 이집트의 파사(PHASA)가 된 모하메드 알리(MOHAMED ALI, 1769-1849)가 태어났다. 18세기 저택인 그의 집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지금도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19세기 말 무렵 까발라는 주요 금융 및 상업 중심지로써 까발라 항구가 중요성을 갖게 된다.

이 항구는 오늘날에도 마께도니아와 쓰라끼 지방에서 생산되는 담배의 수출항으로 널리 쓰여지고 있으며 로마시대에 있었던 빌립삐 전투(BD42년) 당시 브루투스(B.C 85-B.C 42)의 함대가 기항했던 곳이기도 하다.

1912년 불가리아 인에 의해 도시가 정복되었다가 1913년 7월 그리스 해군에 의해 해방되는 동안 까발라는 고통을 겪었다. 그 후 불가리아의 재 점령 기간인 1941년에서 1944년까지 그리스 민족 말살을 위한 혹독한 정책으로 인하여 까발라는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7. 네압볼리 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