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둘레네
현지명 : 레스보스(ΛΕΣΒΟΣ)
1. 성경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사도행전 20 :14 ~ 15)
2. 지명의 유래
λέσβιος < αρχαία ελληνική Λέσβιος < Λέσβος
λάσιος > λάσμος > λέσβος (α>ε, μ>β), ήταν πυκνόδενδρη(밀도가 높았음)
신화적 전통에 따르면 섬의 첫 번째 주민은 Pelasgians 였지만, 이름은 Thessaly의 Lapithes와 함께 이곳에 도착한 Lesvos에서 따 왔다.
여류 시인 샆포스(Sappho)의 고향으로 그리스의 섬들 가운데 보다 크고 보다 아름다운 섬 중의 하나로 정평이 나 있는 섬이다. 미둘레네 섬은 터키의 서안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면적은 1,639제곱 킬로미터, 해안선의 길이는 370km, 상주인구는 85,330여 명이다. (2011년 인구조사)
히오스 섬과 림노스 섬 사이에 위치한 미둘레네 섬은 삐래아스로부터 188해리 가량 떨어져 있다. 미둘레네 같이 크고 아름다운 섬을 이 작은 지면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회상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매력이 있다. 섬 중앙부에 요술같이 깊숙하게 자리한 만과 섬의 남동부에 호수같이 자리한 만이 지형적으로 범상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과 수없이 많은 성채, 시그리에 있는 석화된 나무, 그림 같은 몰리보스, 민속화가 쎄오필로스, 아주 유명하고 오래된 뿌리를 가진 축제 등등 어찌 이루 다 말하랴. 고대로부터 유명했던 서정시인과 묵객들의 영향과 그 정신적 유산은 지금도 미둘레네 인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
에프따리오띠스, 미리빌리스, 베네지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노벨리스트 오딧세아스 엘리띠스 등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이곳 미둘레네 출신들이다.
미둘레네 섬은 애개 해의 유니폼이라고 불리듯 소나무, 올리브, 토토리, 밤, 플라타너스, 월계수 등의 나무가 많으며 다양한 향 식물들이 많다. 매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섬으로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기후 또한 아주 좋은 섬이다. 섬의 주요 특산물로는 양질의 올리브 오일과 치즈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또한 우조와 깔로니스 만에서 잡은 신선한 사르델라(작은 생선)와 민예품, 세라믹, 나무조각, 천을 빼놓을 수 없다.
3. 역사
미둘레네 섬은 선사시대에 ‘라시아’, ‘이멜띠’, ‘뻴라스기아’, ‘애씨오삐’, ‘애올리스’, ‘민또니스’, ‘마까리아’, ‘잇사’, ‘엘메띠’, ‘라스빠’라고 다양하게 불려졌다. 신화에 따르면 미둘레네 섬에 사람들이 거주한 것은 마까라스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까라스에게는 미띨리니, 미씸나, 잇사, 안띳사, 아리스비라는 5명의 딸과 에레소스, 끼드로라오스, 네안드로스, 레프낖뽀라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마까라스의 자녀들의 이름이 미둘레네 섬 주요 마을의 명칭이 되었다. 미둘레네 역사의 출발점은 알 수 없으나 기원전 4000년경에 최초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둘레네 섬에서 뜨로이와 미케네 문화의 개화된 흔적들은 발굴된 유적들과 유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기원전 1529년 데브깔리오나스 시대에 있었던 대 홍수에 의해 미둘레네는 황폐해졌다. 기원전 1507년 뻬라스고스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393-1184년에는 아해오스인들이 정착하였다. 트로이가 함락된 60년 후인 1100-1000년 뻰씨리디스 그라스에 의해 애올리안 인들이 미둘레네 섬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 시기에 미띨리니인들은 발전을 거듭하여 상업과 소아시아에 식민을 확대함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미띨리니 인들은 아힐레아스 무덤 근처인 시기오 북쪽에 ‘아힐리오’라는 도시를 건설하면서 소아시아 트로이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기원전 8세기 말과 7세기에 영적 개화를 하게 되고 그 가운데 키타 연주자인 아리오나스, 시인 알깨오스, 여류 서정시인 샆뽀 등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인사들이다.
기원전 570년 이집트에 그리스 상업기지를 설치하였으며 527년 이집트를 대항하는 깜비시스의 원정에 그들의 선단을 동원하였다.
뻴로뽄니소스 전쟁시에 미씸내우스를 제외하고 스빠르띠 편에 가담하였다가 427년 아테네 인들에게 극심한 보복을 당하였다. 이 시기에 미둘레네 인들이 많이 살해 당했으며 그들의 땅 역시 빼았겼다. 이후 마께도니아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이집트의 쁘똘레매오스에 속하게 되었다.
기원전 88년부터 로마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이 시기에 로마인들은 섬에 자치권을 부여하였다. 이 시기에 다시 미둘레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다. 52년경 사도 바울이 지나갔으며 이후 비잔틴 제국에 속하였다. 851년 사라센 제국의 침략을 받아 1084년까지 사라센의 통치를 받다가 이듬해인 1085년 비잔틴 제국에 의해 해방되었다. 그러나 이후 베네치아와 십자군들에 의해 많은 약탈을 당하였다. 비잔틴 황제인 요안니스 빨래오로고스에 의해 딸 마리아의 결혼식에 혼수로 미둘레네 섬을 프랑키스꼬 가뗄루조에게 하사하였다. 1462년까지 가뗄루조 가에 의해 지배되다가 모아메쓰 2세에 의해 약탈 당하여 황폐해졌다. 이때에 10만 명의 섬 주민들이 3만명으로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1821년 독립전쟁에 힘써 싸웠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고 터키의 잔학한 통치를 받다가 1912년 해방되었다. 1941년 5월 4일부터 독일의 통치를 받다가 1944년 9월 10일 다시 그리스에 반환되어 회복되고 있는 중이다.
4. 유적지와 가볼 곳
미띨리니
미띨리니는 미둘레네 섬의 수도이자 항구 자체의 색채를 가지고 있는 인구 30,000명의 아름다운 도시다.
미띨리니는 고대 도시터에 자리한 도시로 ‘에빠노 스깔라’ 지역에는 터키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며 ‘빨리아 미띨리니’에는 작은 골목길과 낮은 건물, 시장과 가계들이 성채 쪽으로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까스뜨로
본래 비잔틴 시대에 건립된 성채였으며 1373년 제노바인 프랑키스꼬 가뗄루조에 의해 재건된 성채로 지중해에서 그 규모가 가장 컸던 성채 가운데 하나였다. 성채안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로마시대 또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돌로된 물 저장소로 그 상태가 아주 양호하며 4,000큐빅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고대 연극장
도시 북서쪽 높은 지점에 자리한 이 극장은 1958년 고고학자인 에방겔리디스에 의해 발굴된 극장으로 15,000명 규모의 큰 극장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건립되어 로마 시대에 수리된 극장으로 뽐피오스 극장의 원형이다. 로마의 뽐피오스가 미띨리니를 방문했을 때 이 극장을 보고 명을 내려 로마에 그의 극장을 짓도록 한 것이다.
고고학 박물관
미띨리니 항구 가까이에 있는 옛 대저택에 자리하고 있으며 미둘레네 섬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띳사에서 나온 알하이끼 시대의 토기와 고대 삘라에서 출토된 붉은 질그릇, 메손에서 나온 금화 등이 있다. 특히 기원전 3300-1200년까지의 고대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박물관이다.
리모노스 수도원
미둘레네 섬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중요한 수도원이다.
1523년경에 지어진 수도원으로 터키 시대에 미둘레네 섬의 영적도장이자 비밀학교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수도원의 도서관에는 9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값을 헤아릴 수 없는 필사본들이 소장되어 있다
석화목 숲
이곳은 석화목의 몸통을 볼 수 있는 건조하고 거친 토양을 가진 지역이다. 석화목의 크기는 둘레가 3m, 높이가 1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런 이상한 모습은 아마도 백만년 전에 있었던 화산의 폭발로 인해 나무가 석화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쎄르미의 타워들
예전에는 160개의 탑들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했으며 현재에는 그 흔적과 탑들이 조금만 남아 있다. 근처에 쎄르미의 온천이 있는데 물의 온도은 49.9도에 이르며 신경계통과 부인병에 탁월한 치료 효과가 있다.
고대에는 이곳에서 알떼미스 여신을 섬겼으며 이 여신이 온천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몰리보스 또는 미씸나
고대에 ‘미씸나’로 불렸던 곳으로 아름다운 어항이며 수정 같은 바다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다양한 색상과 전통적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바다에서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성채까지 가득 들어서 있는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을이다. 고대에 레스보스 섬에서 미띨리니와 함께 쌍벽을 이루며 강성했던 도시였다.
쁠로마리
미띨리니 남서쪽 41Km 지점에 있는 마을로 미둘레네 섬 제2의 도시다. 다양한 색상으로 건축된 새로운 건물들이 언덕에까지 꽉 들어선 항구 마을이며, 넓은 광장은 이곳의 부유함을 대변해 주고 있다. 특산물은 ‘쁠로마리’라고 불리는 우조(술)이다.
바떼라
섬의 남쪽에 있는 자연적인 모래해변으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모래해변은 길이가 8Km, 넓이 30-40m에 이르는 해안으로 그 규모가 대단히 크며 아기오스 포까스 교회는 고대의 디오니소스 신전이 있던 곳에 건립된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