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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도

현지명 : 로도스(ΡΟΔΟΣ)

1. 성경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한 후 우리는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갔고 이튿날 로도에 들렀다가 바다라에 도착하였다. (사도행전 21:1)

2. 지명의 유래

ρόδο < αρχαία ελληνική ῥόδον

  1. (λουλούδι) το άνθος της τριανταφυλλιάς, τριαντάφυλλο

  2. (μεταφορικά) κάτι πολύ όμορφο

ρόδο του Ισπαχάν (για μια όμορφη κοπέλα)

(꽃) 장미 ・ 장미의 꽃

(비유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것

이스파한 장미 (아름다운 소녀를 위해)

 από την αρχαία εποχή έχει επικρατήσει ο συσχετισμός του ονόματος με το ομώνυμο λουλούδι, το οποίο οι αρχαίοι κάτοικοι υιοθέτησαν ως έμβλημα του θεού Ηλίου  και  μοιάζει αρκετά με το τριαντάφυλλο. Γι’ αυτό και τα νομίσματα της Ρόδου παρίσταναν από το ένα μέρος το κεφάλι του Ήλιου και από το άλλο το Ρόδον. Πιστεύεται ότι αυτό έδωσε το όνομα του στη Ρόδη,τη μεγαλύτερη από τις Ωκεανίδες ,η οποία παντρεύτηκε το θεό Ήλιο.

 고대부터 이름과 동음이의어인 꽃의 연관성이 강했으며 고대 주민들이 태양신의 상징으로 여긴 장미와 매우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로즈의 동전은 한쪽에는 태양의 머리를, 다른 한쪽에는 Ρόδον(로돈)을 나타낸다. Helios 신과 결혼한 Oceanids 중 가장 큰 Rhodes에게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고 유래한다.

(출처: https://www.rodiaki.gr/article/335594/apo-poy-phran-to-onoma-toys-ta-nhsia-mas)

 로도스 섬은 그리스에서 네 번째, 도데까니사에서 가장 큰 섬으로 에개해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아시아 서안에 가까운 섬이다. 로도스라는 이름은 루끼아노스에 의하면 일리오스의 딸 로도스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삐래아스 항구로부터 오는 배들은 통상적으로 로도스 섬의 동쪽 항구에 입항하게 된다. 이곳 항구에 금빛 석양이 물들면, 고대 태양의 신 일리오스가 있던 자리에 세워져 있는 청동 사슴상도 금빛으로 물들어 간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기자의 대 피라미드,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프스 상, 에페소스의 알떼미스 신전, 할리카르나소스[터키 서남부의 보드룸 지역]의 마우솔레움-대영묘라는 뜻, 로도스 섬의 꼴로소스-거상, 알렉산드리아의 빠로스-등대라는 뜻) 가운데 하나였던 꼴로소스(거상)가 있던 곳이다. 이 로도스 섬은 중세 성 요한 기사단의 거점으로 그들의 족적을 강하게 발견할 수 있는 섬이다.

 삐래아스 항구로부터 260해리 가량 떨어져 있으며 섬의 면적은 1,398㎢, 해안선의 길이는 220km, 상주인구는 약 9만 명이다. 섬의 가장 높은 산은 서쪽에 있는 아따비로스로 해발 1,215m이며 다른 섬에 비해 대체로 물이 풍부한 편이며 일년 내내 기후가 좋은 편이다. 대부분 많은 주민들이 관광산업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섬의 주요 산물로는 기름과 와인, 세라믹, 수예품, 천과 카페트 등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이 섬은 지중해의 진주라고 불리고 있으며 일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섬으로 유명하며,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물씬 풍겨나는 섬이다.

3. 역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로도스는 헤라클레스의 아들 뜰리뽈레모스의 영도아래 9척의 선단이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다고 언급하였다.

 로도스 섬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기원전 16세기에 미노아 인들이, 15세기부터는 미끼네스, 띠린싸, 알고스, 아띠끼 지방에서 온 아해오스 인들이, 11세기부터는 도리아 인들이 살았다. 도리아 인들이 린도스, 얄리소스, 까미로스에 도시를 건립하고 빠른 배를 건조하여 해상권을 장악함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이들은 또한 기원전 10-6세기에 소아시아,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등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페르시아 침공시에 소아시아의 여러 지방과 더불어 페르시아 편에 서있다가 이후 기원전 478년 아씨나의 영도 아래 딜로스 동맹에 가입하게 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에는 아테네 편에 들었다가 다시 스파르타 편에 가담하는 줄타기를 했다.

 기원전 408년 세 도시(린도스, 얄리소스, 까미로스)는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섬의 북쪽 해안(오늘날의 로도스)에 새로운 연합 도시를 건설했다. 이 새로운 도시는 빼어난 도시로 명성을 떨치며 철학, 문학, 시학 등에서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또한 이 도시는 해양, 상업,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화폐를 발행하여 지중해 전역에 사용되게 하였다.

 기원전 164년, 로마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로마에 대한 산발적이고도 지속적인 저항이 계속되었다. 이는 로도스가 아닌 딜로스 섬을 자유무역항으로 만드는 이유로 작용했다.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해된 후에 카시오스에 의해 42년 대대적인 파괴가 이어졌으며 이때에 3,000개의 조각이 로마로 실려 나갔다.

 기원후 1세기에 빠블로스(바울) 사도에 의해 기독교가 전해졌다. 297년부터 오랫동안 비잔틴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이 때에 아랍인들과 십자군으로부터 끊임없는 약탈을 당했다. 1309년 성 요한 기사단의 지배를 받으면서 새로운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성 요한 기사단은 유럽의 카톨릭 국가들에서 참여한 사람들로 7개의 언어권으로 구성(프랑스, 쁘로비기아, 오베르니,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나중에 아라고니아와 까스띨리로 분리)됐다. 이들은 예루살렘의 회복, 순례객들의 보호와 편의 제공을 목적으로 했다. 기사단 시기에 중세의 성과 유명한 건물들이 건립되었는데 1444년 이집트의 술탄과 모아메쓰 2세(1480년)의 공격에 대비한 강한 성벽이 세워졌다. 1522년 12월 23일 터키에 양도되기 전까지 213년 동안 성 요한 기사단의 흔적은 문없는 성벽, 성문, 교회, 병원, 숙소, 통치소 등에 깊게 남아있다.

 이후 터키 지배의 암흑기를 거쳐 상선의 증대와 활발한 무역거래를 통해 다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 린도스(섬의 중부 동쪽해안)산 천과 수예품, 특히 접시류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유럽 전역에 팔려 나갔다.  1912년 섬 주민들의 도움으로 이탈리아가 터키를 몰아내고 로도스를 지배했다. 파시즘의 준동으로 독립은 늦어지나 1948년 영국의 통치기를 거쳐 그리스에 편재 독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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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적지

로도스 구도시

 지중해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섬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바다는 일출과 일몰을 받아 일년내내 태양을 머금고 살며 현대와 중세가 한 자리에서 대비와 조화를 연출해 내고 있는 도시다. 산책, 쇼핑, 수영, 휴식, 카지노, 풍부한 음식, 그리고 사색이 있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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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신시가지

 신도시 동쪽에 만드라끼 항구가 있으며 이 항구는 고대 로도스의 항구였던 곳이다.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 로도스의 꼴로소스(거상)가 있었다고 한다. 이 거상은 태양신 아폴론으로 높이 32m의 청동상이었는데 이 동상 밑으로 배들이 출입하였다고 한다. 이 동상은 기원전 302-290년에 리시뽀스의 제자인 린도스 출신 조각가 하리스에 의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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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언덕

 이곳은 1802년 로도스 섬에 말마라 해를 지키기 위해 군인을 주둔시켰던 영국의 선장 스미스의 이름을 따서 명한 곳이다.

 본래 이곳은 ‘알해아 아끄로뽈리’로 기원전 2세기에 건립되고 근대에 복원된 스따디오와 극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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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디니 공원

 로도스 시에서 린도스 쪽으로 가는 외곽 3Km 지점에 있는 이 공원에는 많은 나무들이 심겨져 있으며 작은 호수와 호수 사이를 잇는 냇물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바로 이곳에 고대의 애스히니스가 문학 학교를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팔리라끼

 로도스 시내 동남쪽 16Km에 위치한 이곳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 가운데 하나로 아주 좋은 모래 해변과 깨끗한 바다가 있으며 해양 스포츠로도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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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항겔로스

 로도스시 동남쪽 32Km에 있는 이곳은 로도스 섬의 아름다운 마을 가운데 하나로 주민들의 대부분은 카페트와 토기를 많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품질 좋은 오렌지와 양질의 기름이 생산되고 있으며 종교적 축일 가운데 하나인 ‘까싸리 데프떼라’의 축제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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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도스

 로도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아기오스 빠블로스(성 바울)라는 작은 항구를 갖고 있다.

 아크로폴리의 높이는 해발 116m이며 도보 또는 노새를 이용해 올라갈 수 있다. 성채 밖 밑 부분에는 하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성채 안에는 나무로 조각되어 있고, 세라믹 접시들이 벽의 이곳 저곳에 박혀있고 바닥엔 희고 검은 조약돌들이 깔려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성 요한 기사단 시대인 15-16세기에 건립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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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얄리소스

 고대 로도스 섬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이곳의 높이는 해발 267m이며 현재 남아있는 유적지의 크기는 약600 x 150 m에 이른다. 이곳은 고대로부터 군사상 요지였다. 기원전 4-3세기에 세워진 디아뽈리에아 신전, 뽈리아도스 아씨나 신전, 도리아 양식의 우물이 있다.

 15세기에 성 요한 기사단이 세운 빠나기아 필에리모 교회와 14-15세기의 벽화가 남아있는 아기오스 게올기오스 교회가 있다.

나비들의 계곡

 로도스 시에서 서쪽 해안을 따라 18Km 가량 내려가다 좌회전하여 6Km 정도 가면 계곡물이 흘러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숲은 깊게 우거져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계곡에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 내려간다. 이 사이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나비들이 춤을 추며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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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까미로스

 까미로스는 ‘이라끌리아’를 쓴 유명한 시인 삐산드로스의 고향이다. 1929년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에 의해 신전들과 집들이 함께 있는 도시를 발굴했다. 오랜 세월동안 흙에 묻혀 있었기에 그 형태가 양호한 편이다. 이곳에서 토기, 장신구, 조각, 동상, 묘비 등 아주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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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세도시

 중세도시의 성벽은 약 4Km에 이르며 네아 아고라 가까이에 있는 엘렙쎄리아(자유) 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쁠라띠아 시미’(시미 광장)에 이르게 된다.

 이 광장에 아프로디테 신전의 유물이 남아있으며 왼쪽에는 그리스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시립 미술관이 있다. 광장 가까이에 장식예술 박물관과 성 요한 기사단의 오베르니 어족의 숙소가 있으며 이곳을 조금 지나면 유명한 ‘이 오도스 똔 잎뽑똔’(기사단의 거리)이 나온다.

 이 기사단의 거리 길이는 200m이고 넓이는 6m가량 되는데, 여기에 지나간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육중한 문 위에는 기사단 고유의 문장이 있고 고딕양식으로 된 기사단의 숙소가 이어져 있다. 까스뗄로 오른쪽부터 이탈리아, 프랑스, 쁘로비기아, 스페인 순서로 기사단이 있다. 기사단 거리 끝에 ‘또 아낰또로 뚜 메갈루 마기스뜨루’(기사단 본부)가 있는데 오늘날에는 통상적으로 ‘또 까스뗄로’(성채)라고 불리고 있다. 이 까스뗄로는 기원후 1350년경에 건립되었으며 터키인들이 이곳 지하에 화약을 보관하다가 1856년 화약의 폭발로 파괴되고 1939년 이탈리아 점령기에 다시 재건되었다. 본래 이 왕궁은 기사단 총단장의 숙소와 각 기사단 단장들의 회의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왕궁에는 이탈리아의 비또리오 2세 엠마누엘레 왕 또는 무솔리니가 거하도록 했다.

 이곳 까스뗄로에서 올페오스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시계탑과 술래이만 사원을 방문할 수 있다. 소끄라뚜스 거리에는 가계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붐벼서 마치 동양의 바자를 연상케 만든다.

 소끄라뚜스 길 끝에 ‘쁠라띠아 잎뽀끄라뚜스’(잎뽀끄라뚜스 광장)가 있는데 이 광장은 로도스 섬의 그림 같은 광장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15세기에 아름답게 건립된 상업 재판소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길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쁠라띠아 에브래온’(유대인 광장)을 만나게 되는데 광장 한 가운데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세마리의 해마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여기에서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15세기에 지어진 아기오스 빤뗄레이모나스 교회와 니끼의 빠나기아 교회의 흔적을 볼 수 있다

5. 고고학 박물관

 본래 성 요한 기사단의 병원으로 기사단 단장 Pierre d΄ Aubusson에 의해 1440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 터키인들은 이곳을 종교적이고 군사적인 학교로 사용했으며 1916년부터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박물관 입구에는 천사가 기사단의 표식과 단장 Antoine Fluvian을 잡고 있는 형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가 10,000 길더(Guilder)를 희사했다는 글이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박물관은 6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으며 첫번째 전시실에는 로도스의 요한 기사단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석판들과 14-16세기의 기사단 기장이 조각되어 있는 판들이 전시되어 있다. 두번째 방에는 로도스 여러 지역에서 가져온 무덤의 기념비가 있으며 세번째 방에는 알하이끼와 고전기, 로마시대의 유물들이 있으며 꾸로스 상들과 까미로스 지역에서 가져온 조각 상들과 묘비가 있다. 박물관의 정원에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상들과 무덤의 장식비와 묘비가 전시되어 있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방에는 헬레니즘과 로마시대의 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기원전 2세기의 작품인 앉아서 머리를 추스리는 로도스의 아프로디테 상과 기원전 3세기의 아프로디테의 입상이 전시되어 있다. 여섯번째 방에는 대리석 조각상들과 동상들, 문장식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분리된 전시실에는 토기들과 얄리소스의 장지에서 가져온 유물들과 암포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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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로도스 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