뵈닉스
현지명 : 피니까(Φοίνικα)
1. 성경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사도행전 27 : 12)
2. 지명의 유래
φοινικιά < φοίνικ- + -ιά
피니끼아(φοινικιά)는 고대 그리스어로 단것의 붉은 색과 보라색에서 유래했다. 고고학 문헌에서 이 단어는 항상 빨간색으로 번역된다. 예: "야자" 직물 ....
‘피니끼아’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한 두 번째 견해는 아폴로의 신성한 새가 피닉스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델로스에 있는 아폴로 신전의 존재로 (미코노스의 경우) 뒷받침된다.
뵈닉스는 사도 행전에서 사도 바울을 로마로 옮긴 배인 Good Ports (및 276 명의 다른 승객) 다음에 "희망을 가졌다"는 명확한 언급이 있는 성경적 장소를 의미한다. 겨울에 Good Ports (완곡적으로 "좋은")는 부적합한 항구 ("승인되지 않은 항구")였고 "겨울"(= 겨울을 보내는 것)에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랫쪽에 위치한 항구인 뵈닉스로 가서 선박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Kalous Limenes에서 출발한 직후에 불어 온 바람-"… 이른바 "허리케인 Euroclydon… " 따뜻하고 강한 남동풍-이 있었다. 그 바람으로 강한 난기류가 일어나 Gavdos섬으로 밀려났다. 현지 어부들과 관광객, 그리고 전문 어업에 종사하는 "바다의 사람들"은 이 바람으로 인해 위험해질 것을 (최대 10 일 동안 지속됨)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sorokolevante"라고 부른다. 이 사실을 언급하는 신약 성경의 본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추가로 기록하고 있다. "일행은 배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거기조차도 Gavdos (Klaudin)에서 그들은 강한 바람으로 빠른 속도로 추월한 후 "항해"에 성공하는 듯 했다."
뵈닉스의 위치와 관련하여 사도행전의 기록이 알려 주는 점은, 이곳이 크레타의 남쪽 ‘아름다운 항구’의 서쪽에 있었다는 것과 이곳이 겨울 동안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는 언급뿐이다. 따라서 이곳이 위치했을 법한 곳으로 두 군데가 제시되고 있다. 한 곳은 ‘아름다운 항구’에서 서쪽으로 65km 떨어진 한 곶의 동쪽에 있는 로우트로이며, 또 한 군데는 그 곶의 맞은편에 있는 뵈닉스다. 그리스어 본문은 다음과 같다. 12 Kαι επειδή το λιμάνι δεν ήταν κατάλληλο για να παραχειμάσει κανείς, οι περισσότεροι γνωμοδότησαν να σηκωθούν και από εκεί, ώστε, αφού φτάσουν, αν θα μπορούσαν, στον Φοίνικα, ένα λιμάνι τής Kρήτης, που βλέπει προς τον Λίβα και προς τον Xώρο, να παραχειμάσουν εκεί.
이를 문자적으로 옮기면, 뵈닉스의 항구는 “남서풍을 내려다보고 있고[카타] 북서풍을 내려다보고 있는κατά”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로우트로가 맞다고 보는 학자들은 그 내용이 남서풍과 북서풍이 불어 가는 방향을 “따라”(κατά) 혹은 그러한 바람이 불어 가는 방향을 “향해”(κατά-προς)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이해에 근거하여 사람들은 그 항구가 “북동쪽과 남동쪽으로” 트여 있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로우트로의 항구로 들어가는 입구가 거대한 반원형이라는 사실에 부합될 만한 묘사이다. 뵈닉스가 오늘날 항구로 사용되지 않는 것은 구조상의 이유 때문이지만, 주변 지역의 지형 변화의 영향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뵈닉스에는 두 개의 작은 만입부가 있는데, 하나는 남서쪽을, 다른 하나는 북서쪽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뵈닉스가 맞는 다고 보는 사람들은 “내려다보고 있는”이라는 표현이 바람이 불어 가는 방향이 아니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따라서 요한이 사도 바울을 기리기 위해 "자비로운"집을 세운 스파키온의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이 발을 딛지는 않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존재는 분명하다. 성경적 언급 ("당신은 뵈닉스에서 겨울을 날 수 있었다")으로 뵈닉스의 입지는 확실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뵈닉스에는 최소 세 개의 성당이 있으며, 그 중 가장 오래된 성당은 사도 바울에게 헌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3. Φοίνικας
요한이 사도바울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수도원이다.
성 바울의 집은 요한이 그 당시에 지은 집 중 가장 작은 집이다. 돔 뒤의 십자형 모양은 오늘날까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피렌체의 수도사인 크리스토퍼 부오델모디 (Christopher Buodelmodi)가 언급한 바와 같이, 남쪽 크레타 섬은 교회의 남쪽에서 보이는 섬이다.
성전이 오래되고 낡아서 오늘날 많은 전문 과학자들이 분석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래 전부터 이 성전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의견이 표명되었다.
우리는 성도가 Agios Pavlos, Sfakion의 특정 지역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그의 전기에서 그는 그가 "유능한 하루"를 오랫동안, 즉 왜 그렇게 황량한 지역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는 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아마도 한적하고 황량한 지역은 이 교회를 건설하는 동안 큰 작업장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이유뿐만 아니라 지역의 어려운 건설 조건으로 인해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크기가 작은 이유도 납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풍부한 우아함과 성도의 축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지역의 불리한 조건들을 견딜 수 있게 한다. 또한, Opiso Aegialos에 Agios Ioannis가 머무르는 데는 "유능한 하루"가 걸렸으며, 휴식, 기도 및 금식의 이유로 성도들이 끊임없이 추구했던 것들이 그를 쉬게 하고 필요한 수단과 영적 산소를 제공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의 지상 활동, 재 복음화, 즉 아랍 통치의 긴 밤 직후 정교회 기독교 신앙에서 메갈로 니소스 주민들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