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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드라게

현지명 : 사모쓰라끼(ΣΑΜΟΘΡΑΚΗ)

1. 성경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행16"12)

2. 지명의 유래

"Εξάλλου, το όνομα του νησιού σημαίνει «ψηλή Θράκη» - από το αρχαιοελληνικό σάμος = υψηλή". (αυτήν την ετυμολογία γιά το σάμος = υψηλή αναφέρει το λεξικό "Σταματάκου", στηριζόμενο στον Στράβωνα)

"게다가, 섬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 사모스 = 높은"에서 높은 트라키아를 의미한다. (이 samos = high의 어원은 Strabo를 기반으로 한 사전 "Stamatakou"에서 언급 됨)

쓰라끼 섬과 림노스 섬 사이에 위치한 사모드라게 섬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니끼(NIKE) 상의 발굴지로 알려져 있는 섬이다.

섬의 면적은 178km², 해안선의 길이는 56Km, 상주인구 2,900여 명의 섬으로 그리스 내에서 가장 해산물이 많이 잡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사모드라게 섬은 ‘팽가리’ 또는 ‘사오스’라고 불리는 해발 1,611m의 애개 해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계곡과 우거진 숲을 갖고 있다. 오미로스(호머)에 의하면 팽가리 산 꼭대기에서 바다의 신 뽀시도나스가 200Km 가량 떨어져 있는 ‘뽈레모스 띠스 뜨리아스’(트로이의 전투)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고대에 있어서 이 섬은 아씨나 근교 엘렢시나의 디미뜨라 비밀종교 제의와 쌍벽을 이루었던 ‘이에로 똔 까비론’(까비론 제의)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산의 꼭대기는 바위로 되어 있으며, 바다에 이르기까지 계곡들이 많은 폭포를 이루고 있고 또한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어 자연적 경관이 빼어나다.

사모드라게 섬은 크리스탈 같은 아주 맑은 바다를 갖고 있으며 많은 온천을 갖고 있다. 특히 온천들은 고대로부터 유명했으며 체코의 온천 ‘까를로비 바리’ 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이 섬은 아직까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대의 유적과 자연적 경관 그리고 수정 같은 바다의 매력을 찾으며 또 고요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섬 가운데 하나다.

사모드라게 섬으로의 교통편은 알렠산드루뽈리(29해리)와 매일 연결되는 선편이 있으며 또한 까발라(네압볼리)와도 편수가 적지만 정기선이 운행되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가축업 그리고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3. 역사

사모드라게 섬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11세기부터 건너편 해안에서 온 쓰라끼 인들이 정착하였다.

이 시기에 까비론 비밀제의가 시작되었으며 엘렢시나의 비밀제의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그리스의 큰 신들을 섬겼으며 그 중 디미뜨라, 아디스, 뻬르세포니, 디오스꾸리 등을 더 섬겼다. 이곳 비밀제의에 참가한 자들은 ‘또 스또마 산 따포스’(‘그 입은 무덤같이’라는 뜻)로 그 입을 무덤같이 봉하여 남에게 전하는 것을 제일의 금기사항으로 여겼다.

전승에 의하면 이 제전에서 마께도니아 제국의 아버지 필맆뽀스 2세가 이삐로스 지방의 여왕 올림피아다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결혼을 통하여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태어나게 되었으니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장소다.

까비론 제의는 해마다 열렸으며 제전 참가자들은 신전에 많은 봉헌물들을 드렸다고 한다. 그 가운데 알시노이, 쁘똘레마이오스 등이 있으며 사모드라게의 니끼상도 역시 그 봉헌물 가운데 하나였다. 고대로부터 유명했던 이 제전은 사모드라게를 북 애개 해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게 했으며 동시에 사모드라게에 부유함과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레스보스 섬과 소아시아에서 온 애올리안 인들이 그리스도 이전 8세기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기원 전5세기와 3세기에 최 절정에 이르렀으며 로마시대에 황제들 또한 이곳의 까미론 제전에 참여하였다. 그리스도 이전 84년도에 많은 약탈을 당하였으며 그리스도 이후 200년도에 지진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사모드라게 섬의 부와 명성은 395년에 내린 쎄오도시오스 황제의 이교제전 금지로 까비론 제전이 또한 금지되면서 쇠퇴해 갔다. 디오도로스 시껠리오띠스에 의하면 홍수로 인해 모든 섬들이 바다에 잠겼을 때 사모드라게의 팽가리 산으로 대피한 자들만이 살아 남았다고 한다. 이곳에 살아 남았던 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까비론 제의를 전파하고 또한 봉헌물을 드렸다고 한다.

지역전승에 의하면 이라끌리스, 야소나스, 디오스꾸리, 올페아스, 아가멤노나스, 오딧세아스 등이 까비론 제의에 참여했었다고 전해진다. 제전에 참여한 자들은 머리에 올리브 관을 쓰고 천을 띠로 두르고 아주 큰 홍수의 위험에서 건져준 신을 열렬히 찬양하였다고 한다.

제전 참여자들은 죄를 고백하는 의식을 행하고 이어서 제관은 그들의 죄를 사함을 선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제전은 림노스 섬과 비오띠아 지역에서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그리스 전역에 받아들여 졌다. 비잔틴 제국시대에 ‘빨리아 뽈리’(옛 도시)를 버려두고 섬의 안쪽으로 이동하여 호라를 세웠다.

1430년도에 제노바 인 가뗄루조스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1457년 터키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1912년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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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역소개

 호라(사모드라키) 

팽가리 산의 북서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까마리오띳사 항구로부터 동쪽 4Km 지점에 위치한 사모쓰라끼 섬의 수도다. 마을은 중세의 성채 아래에 반원형 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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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미

까마리오띳사 항구로부터 북동쪽 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름답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지역으로 고대에 아주 유명했던 온천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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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로피띠스 일리아스

까마리오띳사 항구 남동쪽 15Km 지점에 있으며 전통적인 건물들이 있는 그림 같은 마을로 바다를 향한 경관이 대단히 빼어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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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드라게

위대한 신들의 성소

5. 고고학 박물관

메갈론 쎄온(까비론)에서 100m 가량 떨어져 있으며 사모드라게 섬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첫 번째 전시실에는 까비론 성역의 건물들이 재현되어 있으며 왕궁의 기둥들과 입실 금지 비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2 전시실에는 건축 조각물들과 전문과 신전 그리고 떼메노스에서 발굴한 박공 장식물, 제의 도구들, 조각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3 전시실에는 니끼의 대리석 상, 세라믹류, 비문, 토기 등이 있으며 제4 전시실에는 세라믹류와 장식물 그리고 고대도시의 장지에서 나온 유물 등이 있다. 박물관은 작지만 충분히 돌아볼 가치가 있는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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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빨래오뽈리(고대도시)

까마리오띳사 항구로부터 북동쪽 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크세니아 호텔 곁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기원전 7세기에 형성된 고대의 도시로 숲이 우거져 있으며 이곳에서 바다를 향한 경관이 상당히 빼어나다. 1863-1866년 프랑스 인들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유명한 날개 달린 니끼 상을 발굴하여 파리로 반출하여 나갔다.

고대도시의 서쪽 지역에 유명한 ‘이에로 똔 까비론’ 또는 ‘똔 메갈론 쎄온’이라고 불리는 성역이 있다.

이곳에서 동쪽에 있는 쁘똘레매오스 2세의 문을 필두로 ‘끼끌리꼬 이꼬도미마’(둥근 주거지), 아리대오스의 삘맆뽀스와 알렠산드로스 4세의 기념물, 왕궁, 제관 숙소, ‘쏠로스’(원주형 건물), ‘떼메노스’(종교적 제의의 장소), 신전, ‘알하이스띠끼 꼬히’(알하이끼 견지), 대리석 제단, 극장, 밀리시아스의 봉헌물, 헬레니즘 시대의 건물, 스또아, 니끼의 건물 등이 있다.

Temple of the Great Gods at Samothraki i

7. 사모드라게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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