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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현지명 : 필립삐(Φίλιπποι)

1. 성경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행16"12)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빌1:1)

2. 지명의 유래

 까발라에서 드라마로 가는 길 서쪽 15km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고대의 이름은 ‘끄리니데스’(KRENIDES, 샘들이라는 뜻)이며 현재에는 에그나띠아 길 좌우에 유적지만 남아 있다.

Φίλιππος < αρχαία ελληνική Φίλιππος < φίλος (φίλ-) + ἵππος

(ο φίλος του αλόγου)

3. 역사

 싸소스섬 사람들의 의해 기원전 6세기에 도시가 형성되었으나 곧 소멸되었다. 기원전 361년도에 아씨나에서 유배된 깔리스뜨라또스(KALLISTRATOS)가 싸소스 섬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기원전 356년 필립뽀스 2세 마께돈(PHILIP 2 OF MACEDON)이 점령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립삐’라고 개명하였다.

에그나티아 도로(VIA EGNATIA)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으나 기원전 42년 빌립삐 전투 이후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에 의해 다시 재건설 되고 기원전 27년부터는 “COLONIA JULIA AUGUSTA PHILIPPENSIS”라 불려 졌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과 3차 전도여행 때 교회를 세웠던 곳이며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로마에서(또는 에베소에서) 빌립보 서신을 보냈다. 사도 바울의 선교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리디아 집사는 부근에 있는 ‘지각띠스’ 강에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일찍부터 기독교가 흥성하던 곳이며 기원후 5 세기경의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를 볼 수 있다. 473년에 고트 족에 의해 점령당했고 비잔틴 시대에는 주교(METROPOLITAN)좌가 있었으나 후에 드라마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까발라에 위치하고 있다. 950년경에 도시가 파괴되었으며 현재에는 유적지 부근 마을에 1,700여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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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적지

​포럼

99 X 50m 의 포장된 광장으로주변의 여러 건물들은 다 파괴되고 기초들만 남아있는데 빌립보의 유명시민들과 황제들의 입상, 그리고 도서관과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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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A

도로 윗 부분의 매표소 우측 상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크기는 동서130m, 남북으로 50m 이르며 세례소(침례소)가 잘 보존되어 있다.

북서쪽에 이집트의 신을 섬겼던 성소의 터와 유물이 남아 있고 북동쪽에 연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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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B

도로에서 낮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디레클렐’(DIREKLER 터키어로서 `기둥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어 지며 바실리카 양식에서 돔이 있는 십자가형의 비잔틴식 교회의 모습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교회 터이다. 현재 남아있는 기둥은 서쪽편의 기둥으로 837년에 불가리아 인들이 점령해 이곳에 글자를 새겼으나 1943년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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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C

narthex와 가로 통로, 이중 강단, 고급스러운 바닥 대리석 및 풍부한 조각과 건축 장식이 있는 장엄한 3 개의 통로가 있는 대성당이다. 이는 기원 후 6 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장실

공의회당 B 뒤 편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찾지 못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수세식 화장실로 되어 있는데 역시 남성용이다. 그리스 전역에서 발굴된 화장실은 대개 남성용이었으며 여성들은 가정에서 용무를 보도록 하였다.

​감옥

 이 감옥은 매표소 좌측에 있으며 건립 연대는 로마시대의 것으로 5세기 경부터 사도 바울이 갇혔던 감옥(사도행전 16장)이라고 믿게 되었고 후에 그의 생애가 벽화로 그려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바울이 수감된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실제로 로마의 물탱크 (cisterna)였으며 나중에 예배 장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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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도시가 만들어질 때(기원전 4세기경) 같이 건축되었던 흔적이 있으며 로마시대인 2세기에 개축되었다. 16세기까지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후에 심하게 파괴되었고 1957-1959년도에 관객석이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빌립보 축제가 여름에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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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곤

 "옥타곤"은 빌립보 주교 교회의 완전한 단지였다. 이곳은 세 가지 건축 단계 (4 세기 말 / 5 세기 초부터 서기 6 세기 중반까지)를 보여주며, 사도 바울에게 헌정된 집 부지에 지어진 팔각형 교회 (서기 4 세기 초)가 포함된다. 

이 집은 헬레니즘 이후의 무덤-영웅 대신에 차례로 세워졌다. 복합 단지에는 항아리, 세례당, 목욕탕, 2 층 교구 및 Egnatia Odos의 기념비적 기둥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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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고학 박물관

 사도 바울의 감옥을 지나 오른쪽 산 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박물관으로 전실을 포함하여 5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선사시대의 돌로 된 공구들과 세라믹 종류들은 니낄리따스 언덕에서 발굴된 것들이다. 흥미 있는 것들로는 로마시대와 기독교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물들과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졌던 주화들이다. 제4전시실(위 층)에 니끼와 아테나의 동상 그리고 마르꼬스 아브릴리오스(M, AURELIOS)의 초상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6. 리디아 기념교회

 전도자 누가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를 처음 여행하는 49-50년 겨울에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빌립보에 도착했다. 그는 매주 토요일 Zygaktis 강둑에 소수의 유대인들이 모이는 장소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이 바울의 설교를 들었으며, 그 중에는 직물 염색을 위한 자주색 상인이었던 소아시아의 Thyateira 출신 리디아가 있었다. 리디아는 바울을 만나 기독교인으로 침례를 받고 후에 기독교 전파를 도운 최초의 그리스 및 유럽 여성이다.

 이 위대한 사건을 기념하여 교회 세례당은 1974년에 빌립보 대도시, 네압볼리의 알렉산더 타소스에 의해 지어졌다. 계획은 건축가 Ioannis Koumanoudis에 의해 이루어졌고 프로젝트의 실행은 건축가-엔지니어 Christos Batsis에 의해 수행되었다. 세례당은 팔각형 모양으로 중앙에는 유아 세례가 이루어지는 대리석 세례(침례)소가 있고 양쪽에는 성인 세례를 위한 라커룸이 있다. 그 내부는 많은 인상적인 예술 작품, 모자이크, hagiographies, 스테인드 글라스, 유명 예술가들의 창작물로 장식되어 있으며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이 머무는 동안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전통에 따라 리디아의 세례가 있었던 강둑에는 빌립보의 초기 기독교 대성당에 보존 된 것과 같은 십자가 모양의 열린 세례당이 있다. 이곳에서 매년 5월 20일, 성 리디아 기념일에 성인 세례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