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 모
현지명 : 빠뜨모스(ΠΑΤΜΟΣ)
1. 성경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요한계시록 1 : 9)
2. 지명의 유래
Η Πάτμος θεωρείται το «ιερό νησί» της Δωδεκανήσου. Σύμφωνα με την παράδοση, αλλά και με βάση επιστημονικά δεδομένα, το νησί αναδύθηκε από τη θάλασσα. Η Πάτμος (κοινώς Πάτινος), απαντάται επιγραφικά και ως «Πάτνος». Το όνομά της ετυμολογείται από τη λέξη «πάτνη» = φάτνη. Η πρώτη ονομασία του νησιού θεωρείται ότι ήταν «Λητωίς», από τη θεά Άρτεμη, κόρη της Λητούς, καθώς πιστεύεται ότι χάρη σε εκείνη γεννήθηκε η Πάτμος. Κάποιοι πιστεύουν ότι το όνομά της το πήρε από το όρος Λάτμος της Μικράς Ασίας, όπου εκεί, κατά τους αρχαίους χρόνους, λατρεύονταν ιδιαίτερα η θεά Άρτεμη, απ” όπου προήλθαν οι πρώτοι κάτοικοι του νησιού, μεταφέροντας και τη λατρεία της Άρτεμης.
밧모섬은 Dodecanese의 "신성한 섬"으로 간주된다. 전통에 따르면, 또한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면 섬은 바다에서 나왔다. Patmos(일반적으로 Patinos)는 또한 "Patnos"로 발견된다. 그 이름은 "patni"= manger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섬의 이름은 레토의 딸 아르테미스 여신에 의해 리또이스«Λητωίς»로 간주되며, 그녀는 파트모스(Πάτμος) 덕분에 태어났다고 믿는다. 일부 사람들은 소아시아의 Latmos 산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믿는다. 고대 Artemis 여신이 섬의 첫 거주자가 도착한 곳에서 Artemis 숭배를 전수했다고 전해진다.
애개해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밧모섬은 이까리아 섬과 레로스 섬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34㎢, 해안선의 길이는 63km, 상주인구 2,600여 명의 작은 섬이다. 작지만 유명한 곳으로 순례객들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성지이다. 밤에 페리를 타고 밧모섬에 다다르면 산 꼭대기에 불을 밝히고 있는 성 요한 수도원의 성채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항구 입구 오른쪽 산 꼭대기에도 커다란 십자가 조명 또한 다른 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전해준다. 유람선에서 내리는 관람객들은 바쁘게 순례의 길을 재촉한다. 사도 요한의 계시동굴에서 수도원까지 다시는 못 보고 못 만날 듯 아쉬움을 토해내며 애개해의 예루살렘을 순례한다. 얼마 후 그들이 떠나가면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이 섬에는 고요함과 정숙함, 그리고 존경심이 옷깃을 여미듯 찾아 든다. 이곳은 분주한 일상과 욕심을 버리고 고도에 유배되어 온 심정으로 걸어 다녀야 제격이다. 그래야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고 밧모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게 된다. 항구지역인 스깔라 마을에서 계시동굴로, 그리고 다시 수도원으로 걸어오르는 길은 조금 힘들지만 무한한 기쁨을 가져다 준다. 특히 수난절과 부활절 절기 행사 때는 그리스 전역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섬 전체가 붐비며 계속 이어지는 예배와 십자가를 앞세운 촛불 행진은 잊지 못할 추억을 가져다 준다. 성 요한 수도원은 호라 마을 언덕 꼭대기에 철옹성처럼 섬 전체를 내려다 보고 서 있다.
3. 역사
밧모섬에는 까레스인들이 최초로 거주했던 것으로 보여지며 이후 도리아인들과 이오니아인들이 차례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화에 의하면 오레스띠스가 어머니를 살해한 후에 에리니에스의 추적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본래 이 섬은 바다에 잠겨 있었는데 리또의 딸 아르테미스가 달빛에 비친 모습에 반하여 수면 위로 끌어 올리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르테미스가 소아시아의 까리아 지방에 있는 라뜨모스 산의 자기 신전에서 셀리니(달의 여신)를 만나고 그의 허락으로 이 섬을 끌어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힘에 겨웠던 아르테미스가 이후 아뽈로나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의 중재로 제우스의 도움을 입어 수면으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물에 잠겨 젖어있던 이 섬을 일리오스는 태양을 내리쬐어 비쳐주고 여기에 아네모스는 바람을 불어주어 말렸다고 한다. 그래서 밧모섬은 신화처럼 태앙에 너무 노출된 때문인지, 바람에 지나치게 말려졌는지 모르지만 모두 민둥산이다.
이 섬의 고대 이름은 기원전 5세기의 발굴된 비에 의하면 ‘빠뜨노스’라고 적혀 있으며 오늘날 밧모라는 지명은 소아시아의 ‘오로스 라뜨모스’(라뜨모스 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기원전 6-4세기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이며 이 시기 인구는 12,000-15,000명 가량이었다고 한다. 이 시대에 제우스, 아뽈로나스, 아르테미스, 디오니소스 등의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로마시대에 로마인들은 이 섬을 유배지로 사용했으며 도미띠아노스 황제 때인 A.D. 95년에 아기오스 요안니스(성 요한) 쎄오로고스(하나님 말씀이라 불리는 성 요한 사도의 별칭)가 유배되어 왔다.
1088년도에 흐리스또둘로스 신부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알렠시오스 A 꼼니노스의 재정적 후원으로 수도원을 건립했다. 이후 50년 후에 섬 전체가 수도원에 복속되었으며, 이후 수도원 밑쪽에 집과 건물들을 짓는 것을 허용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1207년 베네치아의 통치를 받으면서 낰소스 섬의 두까또스에 귀속되었으며 그에 의해 섬 전체와 수도원이 독립성을 부여 받게 되었다. 1537년부터 오랫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 어둠의 시기에 빠뜨모스 학교가 설립되어 한 줄기 빛을 발하게 된다. 16-19세기에 상업과 해양이 발달하면서 밧모섬은 다시 활성화 되었으며 1912년 이탈리아의 지배 아래 있다가 잠시 동안 밧모섬의 독립이 유지되다 1948년 그리스에 복귀되었다.
4. 유적지와 가볼 곳
계시의 동굴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서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았고 그의 제자인 쁘로호로스가 대필했다고 전해진다. 이 동굴에서 사도 요한이 95-97년까지 18개월 동안 거하였으며 네르바 황제 때에 유배에서 풀려나 에페소스로 돌아 갔다.
동굴과 이어져 있는 교회는 성 안나에게 바쳐진 교회로 흐리스또둘로스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스깔라
빠드모스 섬의 유일한 항구 지역인 이곳은 교회, 경찰서, 항만청, 은행, 여행사, 카페, 가게, 식당, 호텔 및 숙박시설 등이 있는 곳으로 밧모섬의 관문이다. 해안가에 사도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세례터가 있으며 이곳을 지나가면 섬이 둘로 나뉘어질 듯한 좁은 구역이 있다.
밧모 학교
동굴 바로 옆에 있는 이 학교는 1713년 마까리오스 깔로게라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그리스 종교와 정치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을 배출하였으며 그 가운데 엠마누일 크산쏘스가 있다. 오늘날에는 정부가 인정한 교회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빠뜨모스 또는 호라
섬의 수도인 이곳은 해발 150m로 성 요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모든 집들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작은 골목길과 미로가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과거 저택들이 많이 있으며 특히 16세기에 지어진 선장의 집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고라 광장은 스깔라 만을 바라보는 발코니로 불린다.
람비
이 해안은 맑고 깨끗한 물과 색색의 조약돌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을 내는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수영을 즐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조약돌을 찾으려 허리 굽혀 돌들을 뒤적인다. 십자가가 자연스럽게 새겨진 돌을 들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리꼬스
이곳은 그림 같은 해변을 갖고 있으며 모래가 곱고 나무가 있어 수영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 해안 앞쪽 바다에는 높이 10m, 둘레 80m인 깔리까주스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은 한 때 유배지나 수련지로 사용되었다.
4. 성 요한 수도원
호라의 중심에 있는 이 수도원은 언덕 정상 위에 어두운 잿색 돌로 지어진 튼튼한 성채와 같은 곳이다. 1088년 흐리스또둘로스 레뜨리노스 수사가 비잔틴 황제 알렠시오스 A 꼼니노스의 재정적 후원을 입어 건립했다. 본래 이 자리는 고대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수도원에는 메인 성당을 포함한 5개의 작은 교회가 있으며 이중에 흐리스또둘로스 신부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이 수도원은 꼰스탄띠누뽈리의 총대주교 관할 하에 있으며 배의 형태로 되어 있다. 수도원의 외곽 성벽의 높이는 15m, 길이는 북쪽에서 남쪽 53m, 동쪽에서 서쪽 70m에 이른다. 본당 교회는 돔과 십자가 형식으로 상징되는 비잔틴 양식으로 되어 있고, 교회 내부 왼쪽 지하에는 보고가 있으며 이곳에 많은 성인의 유골과 희귀한 보물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인도에서 순교한 성쏘마스(도마) 사도의 유골 일부가 있으며 사도 요한께서 유배되어 오실 때 메었던 쇠사슬이 보존되어 있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칸막이 대의 나무 조각은 금분으로 색칠되어 있으며 천사와 나팔과 독수리 등이 조각되어 있다. 수도원의 도서관에는 3,000권의 도서, 900개의 필사본, 13,000개의 편지, 교지서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6세기의 마르꼬스(마가) 복음서의 필사본과 진귀한 서적들이 많이 있다. 교지서와 편지는 그리스어, 라틴어, 루마니아어, 터키어 등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수도원에는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사본들과 값진 성화, 향로, 촛대, 성배, 홀, 후두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꼭 들어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수도원 외곽 성벽 문을 지나 내벽 문에 이르면 1603년도에 지어진 아기온 아뽀스똘론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