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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

현지명 : 사모스(ΣΑΜΟΣ)

1. 성경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사도행전 20 : 14 ~ 15)

2. 지명의 유래

Το όνομα προκύπτει από την μηκυναϊκή λέξη «σάμη» ή «σάμος», η οποία σημαίνει ύψωμα δίπλα στην ακτή. Η γεωμορφολογία της Σάμου επιβεβαιώνει αυτήν την ονομασία, αφού το νησί έχει αρκετά βουνά και υψώματα.

 이름은 미케네 단어«σάμη» "sami"또는«σάμος»"samo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해안 옆에 있는 언덕을 의미한다. 사모는 여러 산과 언덕이 있는 지형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모 섬은 이까리아 섬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삐래오스 항구로부터 174해리 가량 떨어져 있다. 섬의 면적은 475㎢, 해안선의 길이는 159km, 상주인구는 40,000여 명이다.

 겨울철 어두운 밤에 항해하는 어부들에게 길을 밝혀주고 안전한 항해를 하도록 등대 역할을 하는 것은 섬의 서쪽에 있는 껠끼산(해발 1,433m)에서 발하는 한줄기 불빛이다. 어부들은 흔들리는 풍랑에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에도 이 불빛을 보면 안심하는데 이 불빛을 섬의 주민들은 피타고라스의 ‘쁘네브마’(영, Sprit)라고 말한다.

 피타고라스(기원전 580-490)는 이곳 사모 섬에서 태어나 철학과 수학과 종교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아직도 그는 사모 섬의 어부들에게 살아 있는 존재다. 에개 해에서 아름답고 푸르고 큰 섬으로 이름난 이 사모 섬은 흰 모래해변과 그림 같은 마을, 그리고 아름다운 항구로 정평이 나있다.

사모 섬으로의 교통편은 아씨나와 항공편이 있으며 삐래아스, 까발라, 이까리아, 끼끌라데스 제도의 섬들과 연결되는 선편이 운행되고 있다.

3. 역사

 그리스의 모든 섬들 가운데 소아시아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모 섬은 여러모로 강성함을 갖추어 오랫동안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동시에 이 섬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끊임없이 겪어야 했다. 이런 이유가 중요하고 위대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하나의 동력이 되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를 위시하여 동시대의 위대한 건축가로 명망을 떨쳤던 리꼬스와 쎄오도로스가 있는데 이들은 이라 신전과 아름다운 청동상을 제작했다.  또한 다리오 왕을 위해 기원전 513년에 보스뽀로스 해협에 뜬 다리를 건립한 만드로끌리스가 있으며 메가라에서 온 에브빨리노스는 삐싸고리오에 유명한 수로를 설치하였다.

 델피의 이니오호스 상과 아리스토텔레스 상을 조각하고 제작한 피타고라스 또한 이곳 출신이다. 고대에 있어서 위대한 천문학자들은 대개가 이곳 태생이거나 이곳에서 산 사람들이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사모 섬에는 삐싸고리오 가까이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있는데, 이를 통해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오니아 인들이 기원전 1000년경부터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고대로부터 헤라 여신이 사모 섬에서 태어난 것이라 믿어 헤라 여신을 가장 많이 섬겼다. 이오니아 인들은 이러한 오래된 전통을 이어갔으며 기원전 7세기에 삐싸고리오 근처에 유명한 헤라 신전을 건립했다.

 사모 섬은 독재군주였던 뽈리끄라띠스 제위(기원전 532-522) 시대에 왕성하고 강력한 해군력을 갖고 있었으며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특히 사모의 조선소에서 건조된 배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로 제작된 것으로 50개의 노가 달린 형태의 배였다. 사모 섬의 찬란한 시대는 강력한 전제 자였던 뽈리끄라띠스의 죽음과 함께 끝나는데, 그는 페르시아 군주의 사주를 받은 사람에게 살해되었다. 사모 섬은 페르시아가 살라미나 해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페르시아로부터 적잖은 영향을 입었다.

 아테네 인들의 도움으로 사모 섬에 민주정이 들어섰으며, 기원전 478년에 딜로스 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이후 마케도니아에 복속되고 로마에 의해 점령 되었으며 이어 비잔틴 황실에 귀속되었다.  비잔틴 시대의 느슨한 통치는 고트족과 훈족 및 약탈자들과 침략자들의 끊임없는 찬탈의 대상이 되었다.  기원후 1204년 프랑키 인들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으며 콘스탄티누뽈리가 함락된 후에 터키의 수중에 들어갔다.

 1475년도에 있었던 강한 지진으로 인해 대파되어 100여 년간 황폐화되었다가 터키의 양도아래 그리스 여러 지역에서 살던 사모 섬 사람들과 그리스 인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에 정착지를 건설했으며 자신들 나라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시간이 흘러 1821년도에 이르자 주민들은 터키에 더욱 강력하게 대항하고 섬에 있던 터키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1830년 열강은 사모 섬을 다시 터키에 넘겨 주었는데, 사모스 인들의 자치권은 인정했다.  자치권은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졌는데 터키 술탄의 간섭을 받도록 했으며 이러한 구조는 1912년까지 계속되었다. 주민들의 끊임없는 항쟁을 통하여 1913년 초에 마침내 그리스 국가로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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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적지

사모스 또는 바씨

 나무들이 우거져 푸르고 그림같은 만에 자리한 항구 도시인 이곳에는 약 5,5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섬의 수도다. 이곳을 ‘바씨’라고 부르는 것은 항구 쪽에 주택과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에 바다 위 높은 곳에 동네가 형성되었던 것에서 유래하고 있다. 

 '쁠라띠아 삐싸고라’(피타고라스 광장)에는 대리석 사자상이 있으며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역사적인 아기오스 스삐리도나스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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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박물관

 사모 섬에서 나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이래오에서 나온 유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의 중요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입구 층은 3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으며 주로 기원전 7-5세기의 남자 거상인 ‘쿠로스’상을 위시하여 많은 조각들과 석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위층 또한 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청동상들과 상아조각, 선사시대의 토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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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박물관

 감독좌가 있는 교회인 아기오스 쎄오도로스 옆에 있으며 그리스도, 성모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 등의 귀하고 아름다운 성화가 있다. 또한 성인들의 유골들과 오래된 복음서의 사본들, 미사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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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까리

 사모(바씨) 북서쪽 10Km 지점에 있는 이곳은 사모 섬의 그림같은 항구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가운데 하나다.  ‘꼬까리’라고 부르는 것은 한때 이곳에 아주 많은 양파와 파들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항구과 빼어난 백사장, 많은 따베르나와 까페와 가계들, 주민들의 친절함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까를로바시

 사모 섬의 두 번째 도시이자 제 2의 항구로 사모 섬으로 가는 모든 배들이 먼저 기항하는 곳이다.  이곳은 고대, 중세, 현대로 나뉘어져 있어 섬의 역사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상업과 공업의 중심지로 대저택들과 아름답고 큰 교회들이 있으며, 무너진 공장들이 추억처럼 서있는 곳이다.  이 추억을 찾아 오늘도 사람들은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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삘고스

 수도인 사모에서 남서쪽 55Km 지점에 있는 이곳은 큰 마을로 포도주, 포도, 사과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은 수공품인 천과 카페트가 유명한데 그 품질이 상당히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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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싸고리오

 섬의 남쪽에 있는 이곳은 사모의 고대도시 가운데 하나로 뽈리끄라띠스 시대에는 섬의 수도이기도 했던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그림 같은 항구엔 요트와 배들이 가득하고 여름철뿐만 아니라 봄과 가을에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에 ‘띠가니’라고 불려졌던 곳이며 항구에는 피타고라스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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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스의 이래오

 이곳은 헤라 신전이 있는 곳으로 헤라가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장소다.  선사시대에 지어진 헤라 신전은 본래 나무로 지어졌으며 이 신전이 무너진 다음 기원전 8세기 또는 7세기에 두 번째 신전을 지었다.

 도리아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이 혼합된 신전의 장축은 108.73m, 단축은 54.68m, 높이는 25m였다. 고대에 이곳에서 ‘이래아’와 ‘또네아’의 2대 제전이 해마다 있었다.

6. 사모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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