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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라

현지명 : 미스뜨라(ΜΥΣΤΡΑ)

1. 개요

스빠르띠(스파르타)의 북서쪽 5km, 아씨나에서 257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비잔틴의 폼페이’라고 별명 붙여진 중세 때의 비잔틴 도시의 폐허로 궁전, 집, 수도원, 교회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14-15세기의 비잔틴 건축과 벽화 등이 유명하나 이들의 손상정도가 상당히 심한 상태에 이르고 있어서 근간에 이르러 복원에 힘을 쏟고 있다.

2. 지명의 유래

Η ονομασία του σχετίζεται ετυμολογικά με τη μυζήθρα, είδος τυριού, από το σχήμα του βουνού ή από το επάγγελμα του ιδιοκτήτη του λόφου.

그 이름은 산의 모양이나 언덕 소유자의 직업에서 치즈의 일종인 μυζήθρα (mizithra)와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다.

(출처: http://www.moireaskalamata.gr)

Η ονομασία προέρχεται ετυμολογικά από το τυρί, λόγω του σχήματος του βουνού ή από το επάγγελμα του ιδιοκτήτη του λόφου.

이름은 산의 모양이나 언덕 소유자의 직업으로 인해 치즈에서 어원적으로 유래되었다.

(출처: http://www.despotato.gr/index.php/el/mystras/history/)

3. 역사

이곳은 메지쓰라 언덕에 1249년에 윌리암 데 윌레하르두윈이 타이게토스 산의 슬라브인 산적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래 성채를 쌓았고 이 언덕의 이름 메지쓰라는 프랑크 인들에 의하여 ‘미스트라’로 변형이 되었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어의 방언으로서 MISTRESS란 의미이다.

1259년도에 미하일 빨래오로고스에 의해 윌레하르두인이 3년 동안의 포로생활 끝에 몸값으로 미스트라와 모넴바시아 등을 넘겨주게 되고 그리스인들은 미스트라를 근거지로 해서 프랑크 인들을 엘리스까지 쫓아냈으나 1265년의 ‘마끄리쁠라기’ 전투에서 패배 WILLIAM이 다시 이 지역에 돌아오게 되고 그 사이 많은 스빠르띠 인들이 요새의 보호아래 미스트라 언덕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후 50년간의 투쟁 끝에 그리스 인들이 다시 모리아 지역을 대부분 회복하게 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최후의 황제 야니 빨래오로고스 2세가 황제 위에 오른 곳도 이곳이며 비잔틴 제국 역사 동안 즉 잊혀져 왔던 쁠라쏘나스(플라톤)을 다시 발견한 학자 게모스또스 쁠리쏜이 1400-1442년 동안 여기에 머물렀고 트레비존드의 학자 겸 후에 정교회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옮겨 추기경이 된 벳사리온( 1395-1472)이 여기서 강의를 했다.

1460년에 터키에 점령되었고 1687-1715기간 동안 베네치아 인들이 점령 이 도시의 두 번째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당시 인구는 42.000명 정도이고 잠업이 주요한 산업이었다. 터키에 다시 점령되면서 10년 동안 계속적으로 약탈을 당하여 도시는 사양 길에 접어 들어 갔고 1770년에는 알바니아 군에 의해 커다란 파괴를 당하고 또 1825년에는 이집트의 이브라임의 군대에 의해 약탈 당하고 불탔다. 1834년도에 스빠르띠 도시가 다시 개발되면서 미스트라스는 완전히 잊혀진 도시가 되어버렸다.

1989 년 유네스코 관할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스트라스는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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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적지

아끄로뽈리와 성곽

요새화 시스템의 존재는 비잔틴 도시의 핵심 요소다.  미스트라의 경우 언덕의 동쪽, 북쪽 및 북서쪽에서 개발된 도시 성이다. 물론 남쪽과 남동쪽에서 접근 할 수 없으며 가장 취약한 부분은 인공 요새로 요새화되어 있다. 언덕 꼭대기에는 Frankish 요새가 있으며 정착지는 정사각형 또는 원통형 타워로 강화 된 두 개의 요새로 보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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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유적지

미스트라의 유적지는 ‘말마라’라고 불리는 입구로부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오르게 되는데 이 가운데 볼만한 것을 나열하면 1954년도에 재건된 ‘아기오스 흐리스또포로스’ 교회에는 15세기의 벽화가 남아있다. 

그 순서를 따라 오르면 ‘삐기’(우물)-디아바띠꼬-오히로마-미뜨로뽈리-에방겔리스뜨리아-아기이 쎄오도리-오디기뜨리아(아펜디꼬)—삘리 모넴바시아-아나끄또라-빠레끌리시오(480m 지점)-삘리 나프쁠리오-아기아 소피아-프루리오(망루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621m임)-빨라따끼-아기오스 니꼴라오스-빤따나사(425m 지점)-알혼디꼬 프라띠오뿔루-뻬리블레쁘또스-아기오스 요르기오스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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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도히온

수도원의 단지며 문화의 중심지 그리고 미스트라를 다스렸던 데스뽀띠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두 개의 교회(‘아기이 쎄오도리’교회와 ‘오디기뜨리아’ 또는 ‘아펜디꼬’라고 명명하는)가 있는데 이 두 교회는 다 알히만드리띠 빠호미오스에 의해 13세기 말에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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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뽀띠스의 왕궁

‘아기오스 니꼴라오스’ 교회의 상부 지역에 건립된 이곳은 비잔틴 시대의 공공건물의 드문 예로서 남은 폐허는 여러 시대에 걸쳐서 건축된 흔적을 보이고 있다. 탑과 함께 동쪽 부분은 1300년을 전후로 해서 지어졌으나 남쪽 부분은 14세기 후반에 건립되었다. 집회장으로도 사용되었던 2층에 있는 홀의 크기는 36m x 10m 였으며 중간에 커다란 창문이 나 있었다.

빤따나사

미스트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이름이 나 있는 이곳은 1365년에 마니일 깐다끼지니스가 건축했으며 1428년에 꼰스딴띠노스 빨래오로고스와 수상이었던 야니 프랑꼬뿔로스에 의해서 확장되었다.

5개의 돔이 있는 십자가 형태의 작은 교회가 연결되어 하나의 큰 돔과 다른 하나의 스또아 돔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비잔틴 건축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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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박물관은 1951년에 설립되었다. 대도시 단지의 동쪽 건물에 있는 최초의 비공식 박물관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비잔틴 학자 가브리엘 밀에 의해 설립되었다. 1951 년에 설립 된 이래로 박물관 컬렉션은 상당히 풍부해졌으며 초기 기독교에서 기독교 이후 시대에 이르는 조각, 건축 구성원, 벽화, 휴대용 아이콘, 의상 유적, 보석 및 필사본 코드를 보유하고 있다.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전시물은 아야 소피아에서 발견된 무덤에서 가져온 여성용 실크 드레스와 헤어 브레이드 섹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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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스트라 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