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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와 로마인

사도바울이 빌립보를 방문했을 당시 빌립보는 로마인의 도시였다.

사도바울이 그리스에서 계속적으로 핍박을 받는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유대인이 있었다.

하지만 빌립보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로마인에게 잡혀 감옥에 갖힌다.

심지어 빌립보에는 그리스 전역 어디에나 있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안식일에 회당이 아닌 성밖 강가에 기도하러 갔다가 경건한 여인 루디아를 만나서 전도하게 된다.

사도행전 16장 빌립보 전도장면에서 로마인이란 말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사도바울도 나중에 로마사람인 우리라고 지칭한다. 당시 빌립보는 로마인의 도시였다.

카시아스를 시해한 브루투스와 카시아스가 로마의 동쪽을 차지하고 진을 친 곳이 빌립보였다. 카스아스의 충복이었던 안토니우스와 카시아스가 후계자로 지목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를 중심으로 세력을 집결했다. 그리고 그들이 싸운 역사적 위치가 바로 빌립보 평야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연합군은 승전기념으로 빌립보를 로마와 같이 세금을 감해주는 로마식 도시로 만들었고, 자신들에게 패배한 브루투스 연합군을 그곳에 머무르게 했다. 그래서 빌립보는 로마와 같은 지위를 보장받으며 로마인들이 거주하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이미 로마는 황제의 칙령으로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떠나라고 했다. 이는 로마인의 도시인 빌립보에도 적용되어 유대인들은 빌립보에서 거주할 수 없었다고 보인다. 이것이 바로 커다란 도시 빌립보에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던 이유이다.

이렇게 로마인의 도시에서 바울은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로마의 시민권자임을 밝히면서 재판도 하지않고 때리고 옥에 가둔 통치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 옥을 나선다.

그토록 바울을 미워하는 유대인은 없었지만 로마시민권자로서 로마인들 사이에 머물면서도 맞고 옥에 갖히는 바울의 운명은 참으로 비극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도 복음 전하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이런 그의 한결같은 열정이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이유다.

오늘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김과 승리의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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